근대 유럽 역사에서 중요하게 볼 수 있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민주주의의 성취를 위한 끊임없는 투쟁과 발전의 과정입니다. 실제로 19세기에 이르러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과 같이 선거권과 같은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 많이 일어났는데, 이를 가능하게 한 시초가 바로 17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의회 민주주의에 있습니다. 기존의 왕과 귀족 중심의 정치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투표를 통해 뽑은 의원들이 의회를 이루어 전반적인 국정 운영을 담당하는 의회 민주주의의 등장은, 평민 계층이 투표라는 간접적 행위를 통해서나마 자신들의 뜻을 국가 정치에 반영하는 길이 열렸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한 번 의회 민주주의가 도입된 나라에서는, 계속적인 선거에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시민들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적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나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시민들의 권리는 나날이 증대되어가고 그에 따라 민주주의 체제 그 자체도 발전되어, 오늘날 각 국가들을 운영하는 중요한 정치 시스템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의회 민주주의가 여러 나라에 퍼질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 중의 하나로, 프랑스 혁명을 비롯한 많은 자유주의적 움직임을 겪으면서, 각국의 지배층이 이전의 절대왕정식 통치를 고집하는 것이 더이상 자신들에게 이롭지 않다는 것을 인식했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의회 민주주의의 대상은 결국 "국가 안의 시민"들로서, 세계화로 인해 많은 나라들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서로 깊은 관련을 가지게 된 오늘날에 이르러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민주주의"의 무력함이 곳곳에서 드러나며, <호텔 르완다>에서도 그러한 모습들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르완다에서는 후투족 자치군이 UN이 주도한 평화협상을 파기하고 투치족과의 치열한 내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UN의 평화유지군은 인도주의 원칙을 지킨다는 이유로 자치군에게 총을 제대로 겨누지 못하고, 미국과 프랑스 등의 선진국들은 내전의 종식보다는 자국민들의 안전을 챙기기에만 바쁩니다. 주인공인 폴 루세세바기나는 그들의 행태를 보며 "날 친구로 여기는 줄 알았어." "지금 이 꼴을 봐"라는 말로 절망을 드러내고 있으며, 같은 백인인 기자마저 "사람들이 끔찍한 일이라고 한 마디 한 뒤에 그저 하던 일들을 계속하겠지요"라는 말로 서방의 인도주의를 비관적으로 바라봅니다. 이러한 무관심 속에, 르완다의 사람들은 이유를 모른 채 그저 증오와 광기에 휩싸여 서로를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평화유지군을 이끄는 대위의 말대로 "우리(서양) 눈에 자넨(아프리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진국 정치가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르완다에 나가있는 자국민들은 앞으로의 국내 여론과 정치 상황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사람들이지만, 르완다의 현지인들은 그저 최소한의 인도주의적 원칙에 어긋나지 않으면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인 것이지요. 과거의 베트남 전쟁 때에는 그나마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의 문화가 미국 내에 확산되는 과정에서 반전 여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지만, 90년대 중반의 상황은 70년대와는 달랐나봅니다. 국경을 넘어선 세계 단위의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는 한 이러한 무관심과 비극은 반복되리라고 봅니다.
물론 아프리카 국가의 내정에 선진국이 꼭 개입해야 하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와 현대의 세계사를 살펴보면 당시 식민지 확장과 제국주의를 주도했던 나라들이 현재 아프리카의 혼란한 상황에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2차 세계대전 이후 아프리카 지역에 신생국들이 생겨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의 국경을 살펴보면 다른 대륙의 나라들과 달리 반듯한 직선의 형태를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신생국의 위치 및 경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아프리카 부족의 분포와 서로간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단순한 편의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오래 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부족이 한 국가 안에 묶여있을 경우 갈등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로 미국이나 영국 등의 몇몇 선진국에서 경제적 이익의 극대화를 목적으로 국가 안의 부족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일도 빈번히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 식민지였던 곳에 많은 다국적 기업이 진출해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제3세계의 값싼 노동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이 때 노동의 낮은 값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지 주민들의 민주적 요구를 묵살할 수 있는 독재정권이 들어서는 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다국적 기업이 들어선 아프리카의 나라들 중 상당수가 독재정권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만약 민주주의 혹은 사회주의 정권이 세워질 경우, 어김없이 선진국의 경제적 압박과 내부의 쿠데타로 인해 정권이 무너지게 됩니다. 과거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이 바로 이러한 정치적 과정의 대표적인 희생양이었습니다. 내부의 쿠데타 또한 미국과 영국 등의 나라의 선동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노암 촘스키나 장 지글러와 같은 지식인들에 의해 이미 여러차례 고발된 적이 있습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러한 두 번째 이유가 바로 "국가 민주주의"의 한계에서 비롯되거나 묵인되는 것입니다. 제3세계의 값싼 노동을 통해 들어온 값싼 수입품은 선진국의 복지 수준을 유지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지불함으로서 수입품의 가격이 올라가게 되면, 그만큼 선진국의 시민들의 삶은 힘들어지게 되는 것이니까요. 실제로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까지 제3세계의 문제가 서방세계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오슬로 대학의 한국학자 박노자의 지적을 예로 들면 "노르웨이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임금 하락에는 단결하여 투쟁하지만, 제3세계의 저가 노동에 대한 문제는 신경쓰지 않는" 현상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의 노동자들에게 단결할 것을 호소했던 마르크스의 선언이 무색해지는 순간입니다. 그나마 21세기에 들어 점차적으로 제3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들의 몫을 제3세계에 정당하게 나누어주자는 움직임이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상으로 "국가 민주주의"가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한계를 드러내고 "국가 이기주의"의 형태로 작용하는지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선생님께서 옛 소련의 사회주의 혁명이 실패했던 배경 중의 하나로, 프롤레타리아도 권력을 잡으니 결국 과거의 귀족과 마찬가지로 부패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호텔 르완다>에서도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진국의 시민들 또한, 국가 안에서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주체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자기 국가에 해가 되지 않거나 이익이 된다면, 방조 혹은 암묵적으로 동조할 수 있는 이기적 집단으로 변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호텔 르완다>는 이러한 한계가 어떤 비극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를 1990년대 중반의 르완다라는 시공간을 통해서 잘 보여주는 역사적 텍스트라고 봅니다.
다만 저는 서양 문명의 최대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개인주의와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해서까지 부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문제는 개인주의나 자유주의 그 자체가 아닌, "국가"라는 상대적으로 좁은 범위에 한정되어 적용되었다는 사실로부터 일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주의와 민주주의가 제3세계에도 올바로 적용되어 국가라는 틀을 벗어난 더 큰 단위의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이, 후투족과 투치족의 내전과 같은 비극을 막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리라고 봅니다. 실현 가능성에 있어서 의심의 여지가 많지만, 과거의 프랑스 혁명 당시의 시민들이 그러했듯, 오늘날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다면 느리게나마 역사의 진보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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